XIA / 선언
기술은 의도를 증폭한다.
XIA가 있는 이유를 다섯 편의 짧은 글로.
모든 도구는 누군가의 의도를 증폭한다. 기술에 던질 만한 정직한 질문은 둘뿐이다. 누구의 의도를 키우는가, 그리고 쓰는 사람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우리가 무엇을 왜 만드는지 적은 글이다.
01의도
도구는 중립이 아니다. 피드는 계속 넘기도록, 알림은 열어 보도록, 추천은 따라가도록 만들어졌다. 우연이 아니다. 하나하나가 코드로 지어 사람에게 겨눈 의도다. 인스타그램에 종료 버튼이 없는 이유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노트는 기억하려는 의도를 키우고, 스크립트는 지루한 일을 한 번만 하고 끝내겠다는 의도를 키운다. 기능이 핵심이었던 적은 없다. 핵심은 누구의 의도가 커지는가, 그리고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다.
그래서 무엇이든 만들기 전에 제1원칙으로 돌아가 묻는다. 이것이 정말 필요한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쓰는 사람이 값을 치르고 만드는 사람이 득을 본다는 게 정직한 답이라면, 만들지 않는다.
기술은 사람의 의도를 증폭시킨다. 그래서 기능 자체보다 어떤 의도를 누구를 위해 증폭하는지가 중요하다.
Me.md, 제 1 원칙
02주의
주의와 생각할 여력은 유한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빼앗기고 있다. 하루 열한 시간의 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제품이 무료라면 누군가는 쓰는 사람의 정신으로 값을 치르는 중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도둑맞고 있고, 그 도둑질은 즐거움으로 느껴지게 설계되어 있다.
피드는 진짜 집중이 주는 기분 좋은 회로를 가로챈다. 몰입은 있는데 성취는 없는 가짜 몰입이다. 새벽 네 시, 알고리즘, 손에 남는 건 없다. 누구나 아는 감각이다. 우리는 그것을 거부하는 일을 가운데 두고 연구소를 세웠다.
투박한 차단 목록은 답이 아니다. 인터넷이 우리를 조종하도록 설계되었다면, 우리도 우리 편으로 설계된 도구를 써야 한다. 사람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채고 나머지는 조용히 멀리 두는 도구. 가까워질 필요가 없던 것들을 떼어 놓기만 해도, 생각하고 싶은 것을 생각하며 살 수 있다.
주의와 생각할 여력은 타인의 목적을 위해 탈취되어서는 안 된다. 좋은 기술은 사람이 자신의 인지 자원을 어디에 쓸지 스스로 선택하게 돕는다.
Me.md, 제 1 원칙
03내 것으로 남는 지식
세컨드 브레인은 읽은 것을 전부 쌓아 두는 창고가 아니다. 내 마음속에서 울린 것을 모으는 곳이다. 읽다가 울렸던 문장, 내린 결정과 그 이유, 어렵게 배운 것. 평범한 Markdown으로, 내 디스크 위에, 정본인 Git 저장소 안에 둔다. 적지 않고 돌아보지 않으면 체크메이트 당한다.
구조가 그것을 오래가게 한다. 주제가 아니라 목적으로 노트를 나눠 모든 노트에 집을 하나씩 준다. 영구 노트 하나에 독립된 생각 하나를 담고 다음 노트로 잇는다. 지도는 생각들을 관계 속에 붙들어 둔다. 하루, 한 주, 한 해로 이어지는 노트의 사슬이 평범한 날들을 미래의 내가 읽을 수 있는 맥락으로 바꾼다.
지식 관리는 원하는 일을 계속하게 한다. Notion은 세상과 맞닿아 있지만 Obsidian은 나와 붙어 있다. 우리는 후자를 위해 만든다.
지식 관리는 원하는 일을 지속하게 한다.
영구 노트
04주인이 있는 에이전트
에이전트는 모델 하나가 아니다. 모델에 정체성과 행동 규범, 도구, 그리고 결과를 확인할 사람이 더해진 것이다. 우리는 모델 둘레의 부품을 만들고, 특정 벤더에 묶이지 않게 두어 런타임을 바꿔도 일하는 방식은 그대로 두게 한다. 좋은 스킬을 까서 보면 그들만의 철학이 다른 사람에게도 통한 것이 본질이다. 우리는 그 철학을 규약으로 적는다.
AI 에이전트의 시대에 인지 자원 탈취는 새 얼굴로 다시 찾아온다. "AI야, 그냥 해 줘"는 해방처럼 느껴지지만 조용히 사람의 주체성을 갉아먹는다. 냅다 쓰면 이상한 것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 AI를 쓰려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 좋은 도구를 좋게 쓰려면 쓰는 사람에게도 에너지가 남아 있어야 하고, 하루 종일 좋은 결정만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섬겨야 할 사람을 소진시키는 도구는 이미 실패한 도구다.
그래서 이곳의 모든 에이전트에게는 주인과 분명한 경계, 되돌릴 수 있는 변경이 있다. 사람이 읽는 규약을 똑같이 읽고, 사람이 둘 자리에 노트를 둔다. 상태가 아니라 증거를 돌려준다. 일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을 때 끝난 것이지, 끝났다고 말할 때 끝난 것이 아니다. 모든 세션은 영수증을 남긴다.
좋은 도구를 좋게 쓰려면, 사용자에게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모두의 창업 지원서, 2026
05왜 아타락시아인가
아타락시아는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뜻하는 오래된 말이자, 이 연구소가 자라난 볼트의 이름이다. 그 뒤에 놓인 그림은 마법사 이야기에서 빌려 온 상아탑이다. 세상에 악용되지 않는 마법, 지배자의 신념에 휘둘리지 않는 마법, 오직 순수하게 극만을 추구하는 이상향.
상아는 희고 깨끗하지만 물들기 쉬운 재질이다. 상아와 같다는 것은 변하고 섬세하고 취약하면서도, 그럼에도 물들지 않는 순수를 뜻한다. 세상에서 물러나겠다는 뜻이 아니다. 생각이 갈 곳을 세상이 정하게 두지 않겠다는 거절이다.
XIA는 그 이상을 돌아가게 하는 쪽이다. 볼트 규약, 플러그인, 에이전트 스킬,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매일 가능하게 하는 작은 시스템들. 먼저 우리가 쓰려고 만들고, 버텨 낸 것만 나눈다. 편법은 없다. 길이 맞다면 언젠가 뚫린다.
이상을 품고 고요히 순수하게 나아가는 삶을 원한다. 내 인생의 이상은 여기에 있다.
왜 나의 Obsidian vault 이름은 Ataraxia일까
고범수, XIA 설립자 · 대한민국